[여의도풍향계] 공존 없는 극한 대립…확증편향 그리고 정치의 실종

2023-04-02 3

[여의도풍향계] 공존 없는 극한 대립…확증편향 그리고 정치의 실종

[앵커]

입법을 통해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고 국민을 통합해야 할 정치권에서 사안마다 갈등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대결 구도 때문인데요.

타협 대신 분열만 가속화하며 정치 실종 우려도 나옵니다.

이번 주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그 씁쓸한 그늘을 살펴봤습니다.

[기자]

오늘은 한가지 고사성어로 문을 열어봅니다.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얼음과 숯은 성질이 반대여서 서로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뜻인데요.

쉽게 말해 공존이 불가능한 상황을 일컫는데, 극단의 대척점에서 상생을 허용치 않는 지금의 정치 현실이 그렇습니다.

국회는 쉼 없이 임시회를 열고 있지만, 가팔라진 대치 전선 속에 그 전망은, 이번 달도 그다지 밝아 보이진 않습니다.

앞서 시작부터 공전 우려가 나왔던 3월 국회는 외교, 민생, 검찰 수사까지 사안마다 극한의 대립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중심에 섰던 것은 정부의 대일 외교.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안'을 고리로, 먼저 야권의 공세에 불이 붙었습니다.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짓밟는 2차 가해입니다.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자 오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대책 기구를 띄우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를 단독 소집하는 등 여론전에 나서면서 여당도 공방에 가세했습니다.

"해결의 시작일뿐, 결코 종착역이 아닙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와주진 못할 망정 상임위 전체회의에 양금덕 할머니까지 모셔와서 정쟁을 일으키고…"

'친일이냐 반일이냐', 해묵은 이념 논쟁까지 재연된 가운데,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둘러싼 평가 역시 엇갈렸습니다.

여권은 '미래지향적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자평했지만,

"한일 양국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 국가로 거듭난 것입니다."

야당은 '굴욕 외교' 규탄을 외치며 도심 집회로 향했습니다.

"피해자의 상처를 헤집고 한반도를 진영 대결의 중심으로 몰아넣는 이 굴욕적인 야합, 우리 주권자의 힘으로 반드시 막아냅시다."

이외에도 일본 역사 교과서 논란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등 한일 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현안이, 여전히 뇌관으로 얽혀 있습니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의 효력에 대한 결정을 내렸는데요.

이를 놓고 여야의 '아전인수'식 주장이 펼쳐졌습니다.

헌재는 해당 입법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통과된 법안 자체의 효력은 인정해 정치적 논란의 불을 지폈습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의 편향성을 주장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위법이 있더라도 무효가 아니라고 하면 앞으로 이런 일들은 허용하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면 민주당은 국회 입법권에 대한 존중이라며 환영했습니다.

동시에 검찰 수사권을 회복시킨 법무부 시행령은 위법임이 분명해졌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법치를 뒤흔들며 심각한 국가 혼란을 자초했습니다. 지금 당장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합니다."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민생 현안 처리 역시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정부가 과잉 생산된 쌀을 의무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법 개정안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 됐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가 막판까지 이어졌지만 여야는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고, 다수석을 가진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찬성 169인, 반대 90인, 기권 7인으로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에 대한 수정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농업 경쟁력 저하 등을 이유로 의무 매입에 반대해 온 여권은 즉각 반발했고, 결국 한덕수 국무총리가 고위 당정 협의 뒤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대국민담화까지 발표했습니다.

장기간의 협상에도 상호 힘 자랑 끝에 결국 제자리 걸음에 그치면서, 애꿎은 농민들의 속만 태웠습니다.

이 같은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내 편, 네 편을 나누는 갈라치기는 국민 분열도 가속화시키는 모양새입니다.

사회적 대통합 대신 계층과 세대, 진영에 따른 구분선만 더 선명해지고 있는데, 결국 갈등을 부추겼던 정치권에도 부메랑이 돼 고민의 지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새 지도부 체제에서 연대·포용·탕평을 내건 국민의힘은 최근 김재원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극우성향 인사인 전광훈 목사를 만난 김 최고위원은 '5·18 정신 헌법수록 반대', '우파 천하통일' 등 발언으로 입길에 올랐습니다.

김기현 대표를 비롯해 당내에서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김 최고위원은 재차 몸을 낮췄습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앞으로 자중하겠습니다."

2020년 자유한국당의 총선 참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선 외연 확장이 선결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사법리스크에 대한 당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인적 쇄신을 단행했지만,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을 둘러싼 설왕설래가 일고 있습니다.

일부 지지층의 공격적 언행에 적극 대응을 주문하는 당내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 대표는 거듭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상대와 싸우기도 전에 우리끼리 싸우다간 망해요. 그래서 좀 부족하다 싶어도 받아주고, 억울하다 싶어도 참고…"

맥락은 다르지만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당의 확장성과도 맞물려 있는 문제인 만큼, 고심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낭만이 사라진 정치와 극...